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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올린 글 참고하시고...
2009/04/07 - 단체 활동가의 자격조건은???

오마이뉴스 기사도 참고 하시고...
시민단체 활동가 55.3% "본인 역량 낮다" 평가 - 오마이뉴스

시민단체 활동가들 스스로가 자신의 역량에 대해 매우 낮은 평가를 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능력 때문에 나온 결과는 아닐 것입니다.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갖추어지지 않았고, 역량을 성장시킬 기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기사의 다음 대목입니다.
이번 조사에서 활동가들은 스스로의 긍정적 이미지로 희생과 헌신(42.4%), 열정(12.3%) 등을 꼽았고, 부정적 이미지로 능력부족(23.3%), 전문성 부족(10.0%) 등을 지목했다.
출처 : 시민단체 활동가 55.3% "본인 역량 낮다" 평가 - 오마이뉴스
시민단체의 현재의 상황을 일단 모른척 하고 좀 딴지를 걸어본다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능력보다는 헌신을 보고 사람을 뽑았으니 너무 당연한 결과 아닙니까? 노래부르는 실력으로 뽑았으면 노래를 잘 할테고, 싸움실력으로 뽑았으면 싸움을 잘 할 것이며, 영어실력으로 뽑았으면 영어를 잘 할 것입니다.

헌신성으로 뽑아놓고 능력부족을 아쉬워하는 것은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능력과 역량이 제일 아쉬운 부분이고 꼭 필요한 부분이라면 능력과 역량을 보고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무엇이 더 필요한지 보고 그것에 맞춰 뽑으면 당연히 그에 맞는 활동가들이 다수를 점하게 되겠지요.

국가대표 축구팀을 선발할 때, 우리가 의지나 헌신성을 보고 뽑은 다음에 그들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나요? 아니죠, 능력을 보고 뽑되 의지나 헌신성이 현저히 부족하면 탈락하겠지요. 시민단체의 카운터파트라고 할 기업은 능력을 보고 사람을 뽑아서 역량의 강화를 위한 투자에도 엄청난 자원을 사용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들 보다 더 큰 역량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의지와 헌신성이 필수적인 요소라는 데 동의합니다. 동의하면서도 부러 딴지를 거는 이유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입니다. 혹시라도 시민단체의 열악하다 못해 참혹한 대우와 업무환경을 버텨낼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의지와 헌신성이 지나친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닌가요? 모든 문제를 활동가의 희생으로 떠미는 현재 구조를 지속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해결책은 그 쪽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기사에서는 시급히 해결할 과제로 교육 프로그램개발을 꼽았습니다만, 그럴 여건이 되는데도 일부러 안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있을까요? 임금인상이든 교육 프로그램이든 아니면 활동여건 개선이든 결국은 활동가들을 위해 쓰일 자원이 지금보다 훨씬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결론은 간단합니다. 돈을 더 벌 궁리를 해야하고, 지출 우선순위에서 활동가들을 위한 몫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둘 다 우리 시민단체들이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입니다. 돈이 필요하면, 지금 가진 활동가들의 역량의 상당부분을 돈벌이에 쏟아야 합니다. 시민들에게 사업비를 줄이고 임금과 활동가 교육비를 늘려야 한다고 설득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없다면, 위의 기사에 나온 고민들은 답이 없는 고민일 수 밖에 없습니다. 뭔가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깨질 각오로 덤비지 않는다면 이 상황은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일 좋기는 헌신성과 능력이 아울러 탁월한 인재들이 몰려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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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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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상황을 생각하면 굉장히 뜬금없는 글이기는 합니다만, 잠 자려다가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 잊기 전에 올리려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전업활동가 혹은 상근활동가의 위상과 관련해서 상당히 예민한 문제 중의 하나가 자기결정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업활동가는 회원의 의지에 따라 활동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던지면 상당히 민감한 반발을 느낄 때가 간혹 있습니다.

현재는 - 제가 잘 모르기는 하지만 - 대부분 자율적 결정권 하에서 활동한다, 즉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헌신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실행하는 구조라고 할까요? 많은 운동조직에서 이런 부분을 존중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분위기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그래서 회원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심하면 마치 운동가(활동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봅니다. (글투가 좀 거시기한데, 제가 현실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되는 것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대부분 짐작에 의존해서 쓰는 글입니다.)

그런데 냉정히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에게 당이 있다면 당의 의지에 복종하지 않을까요? 당의 의지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을 진정한 일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회원의 결정에 따른다는 것은 결국 조직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지, 결코 회원 개개인에게 복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조직의 결정에 따르는 것은 활동가의 가장 기초가 아닌가요?

대개 자기결정권을 가지는 분위기라고 해도, 아마 개별 조직 내에서 활동가들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따르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렇다면 회원의 결정에 따르는 데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는 것은, 자기와 동등한 활동가집단 내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그렇지 못한 회원들의 의견은 따를 수 없다는 것이냐는 질문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론 자율적 결정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존중한다는 것과 보장한다는 것은 아주 다른 개념이 아닌가 합니다. 어떻게들 생각하세요? 정말 몰라서 질문 드리는 것이니 기분 나빠하시지 말고 가르침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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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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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호 2009/06/02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님과 같은 주장에 대해 대놓고 기분 나빠하는 상근활동가들이 있나요? 오히려 님의 글은 매우 온건한 표현인 듯한데, 만약 그런 분위기가 아직 강하다면, 우리의 상근활동가들이 아직도 계몽주의적, 엘리트 중심적 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주로 만나는 풀뿌리운동 정체성을 갖는 상근 활동가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그리 크지 않은 듯합니다. 오히려 문제는 회원들의 요구가 공동체적인 이해와 배치된다거나 사회적 연대의식까지를 포용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일 경우에 드러나는데,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요구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어떻게 요구 자체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으로 고려가 집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Favicon of http://amnesty.tistory.com BlogIcon 고은태 2009/06/03 1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으흠... 그렇군요. 아무래도 제가 아직 옛날 분위기만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풀뿌리 쪽은 일상적으로 활동기반이 되는 회원 혹은 대중들과 접촉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회원의 요구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경우는, 제가 있는 쪽도 요새 한참 논의가 진행중입니다. 소위 'externally driven' 외부의 변화에 의해 추동되는 조직을 만들자... 뭐 그런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또는 직접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 Favicon of http://movement20.tistory.com BlogIcon 조아신 2009/06/15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오래간만이죠.. ^^ 옛날 이야기는 아닌거같구요. 여전히 동시대에 존재하는 문제인거 같아요. 그걸 활동가들의 자기결정권이라고 이름붙여야 할런지 모르지만 활동가의 자유로운 생각과 활동에 의거한 운동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구요. 그러한 활동가의 자유로운 운동을 후원하고자 하는 회원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조직이 정말 "조직적"이 되고, 그 조직의 의사결정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의 범위가 넓고 깊어질수록 활동가의 자기결정권이 약해지는거 아닐까요? 어느 한명의 결정이 다른 사람, 다른 조직, 다른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 그 영향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관여될 필요가 있으니까요. 전 그걸 조직의 민주주의의 과정이라고 보는 편입니다만.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에 한정해서만 하는 말입니다. 그 말이 자유로운 사고와 활동과 동일하다고 보지 않으니까요)


2009/02/14 - 정보와 소통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앞의 글을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으셔야 글의 의도를 더욱 분명히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니다.

다음 두 개의 글을 엮고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며 질문을 던지는 글입니다. 다시한번 원작자에게 양해를 구해봅니다. (^^; 너그러이 봐주시어요.)


앞의 글에서는 위의 2번 글에 나오는 단어 '정보'와 '소통'을 '김치'와 '김치찌개'로 바꾸어서 1번글의 문제의식을 담아보려 했습니다. 정보가 김치라면 소통은 김치찌개 혹은 김치찌개를 끓이는 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뻗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글을 담아보겠습니다.



5. '소통'은 항상 똑같은 김치찌개?

2009/02/04 - 인트라넷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윗 글의 '정보'와 '소통'이라는 단어는 앞의 글에서는 '김치'와 '김치찌개'로 바꾸었었고, 이번에는 '요리(법)'와 '요리(잘)하기'로 바꾸었습니다. 



식객들과 요리를 잘 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10명도 채 안되는 주방장에서조차도 요리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서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직책별로도 요리가 잘 안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반대로 비공식적인 시간과 장소 - 예를 들어 담배피거나 술마실 때 - 에서는 요리가 잘 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요리하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비공식적인 자리에 끼지 못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요리법으로부터의 소외감이 문제겠죠. 간혹 공식과 비공식의 경계가 마치 술취한 뒷끝처럼 혼란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꽤 지나간 이야기이긴 합니다. 일하는 단체의 주방장 내에서 요리협동조합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소량의 요리를 맛있게 하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용어는 뭐 요리협동조합이라고도 하고, KCA[각주:1]라고도 하고, 거창하게 WKU[각주:2]라고도 합니다만... 우선은 주방처라는 작은 단위에서부터 일상적으로 요리를 맛있게 하려는 노력을 하고, 그곳의 경험을 통해 좀더 많은 많은 요리를 맛있게 하기의 바다로 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있었을겁니다. 요리협동조합에 빠져들다 보면 재미가 쏠쏠합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공간에서 우리끼리라는 동료의식이 생기게 되고, 농담도 하고, 외부 사람 욕도 하고, 개인적인 고민도 이야기를 하고... 정말 오만 가지 요리법들이 흐르게 되더군요.

반면 요리협동조합이 잘 굴러가니 이 폐쇄적인 이 공간을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요리협동조합에서 오고가는 요리법들이 사실은 식객들과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공개되어야 하지 않을가라는 의문이 계속 드는거죠. 간혹 요리협동조합에 접근하지 못하는 운영위원분들이나 식객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난감할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끼리는 이미 요리협동조합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해온 상태이기 때문에 A이야기를 건너뛰어서 B이야기로 넘어가는게 전혀 어색하지 않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그게 아니니까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요리협동조합을 공개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완전 개방한다는 것은 요리협동조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접근의 개방폭을 넓히자는 것이었습니다. 개방의 대상은 지금 기억으로 대표와 운영위원들을 포함하여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는 자문 및 자원활동그룹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는? 한 두사람의 적극적인 반대, 나머지는 적극적이진 않지만 해볼 수 있겠지만 좀더 세밀하게 따져보자는 분위기였는데 결국 하지 못했습니다. 한두사람의 반대가 크면 추진하기가 쉽지 않은게 또 이곳의 생리였던가 봅니다. 반대의 이유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이유와 아무리 개방하는게 좋다고 하지만 우리끼리만 해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는 두가지였습니다. 만약 이 제안이 통과되었다면 그 다음엔 적절한 시기를 봐서 식객들에게까지 요리협동조합의 개방 범위를 확대해보자는 취지였는데 결국 그 근거를 설득력있게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한 단체의 요리협동조합을 구축하는 것에 도움을 준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서로들 자유롭게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문화가 정착되어가는 거 같아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앞서와 경험들 때문에 똑같은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내부에서 요리하기의 맛에 익숙하여 외부와의 맛있게 요리하기에 무신경해져버리는건 아닌지.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겠지만 정부가 진행하는 일이라는게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민사회단체도 영향력이 커갈수록 요리법의 공개와 공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요리법의 독점은 나쁘다. 요리법은 공유될수록 좋은 것이다"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 아무런 도움도 못되는거겠죠.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요리법을 보다 깊이, 보다 광범위하게 흐르게 하기 위해 의무를 지우거나 규정을 만드는 것도 나름 어쩔 수 없는 대안일 수도 있으나......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요리법의 흐름이 과연 진실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가령 블로그가 중요하기 때문에 조직의 리더가 모든 직원들에게 블로그를 하나씩 굵게의무적으로 개설해서 일주일에 한두개씩 글을 포스팅하라고 한다고 해서 블로그를 통한 요리를 맛있게 하기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듯 말이죠.



6. 언어, 개념, 행위

한국 사회에서는 '소통'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많은 개념을 덮어버리며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은 어떤 감정을 표현하거나 상황을 설명하기에 알맞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그 빈공간이 '소통'과 같은 의미가 광범위한 단어들로 자꾸 매꾸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소통'을 갈망하면 할 수록 '소통'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라고 표현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한국 사회는 각각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감정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발달하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토론 문화가 없다는 것이고, 이것은 토론 문화가 만들어 지는 것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다양한 것들을 '소통'과 같은 말에 담아 갈망하는 분위기가 만들어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 '희망', '정', '꿈'  등등의 개념들도 이런 거대 개념으로 포장되고 있고요. 이것은 언어의 획일화뿐만 아니라 감정의 획일화 현상까지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글: 일곱, <깡통> 말할 수 없는 말, 잊혀져가는 의미, 사라져가는 감정)


7. 소똥, 소통, 소동

제가 이 블로그에는 무엇을 담아볼까,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무엇을 담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곳은 팀블로그이고, 여러 분들 사이에서 제가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하는 것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가고 싶고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소통'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위의 제목을 달고 '소통'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자언어와 이미지 언어를 살펴보고, 어떤 '소통'의 방식을 모색하고 시도해볼 수 있을지 앞으로 풀어가보려고 합니다. 전에 고은태님이 주신 앰네스티 광고물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순간에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 마땅치 않았었는데, 이 공간에서 풀어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소통'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흥미진진합니다.




  1. Kimchi Cooperation Assocation [본문으로]
  2. World Kimchi Union [본문으로]
Posted by no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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